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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당첨과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100% 받은 후기 -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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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당첨과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100% 받은 후기 - 1

모가문제냐 2019. 9. 30. 22:13

행복주택 당첨 통지 받고 기뻐서 방방 뛰었던 것도 잠시였다. 한 달도 안되는 기한 내에 계약을 해야했는데 당장 계약금 낼 돈이 없었고, 보증금은 어떻게 내야할지 막막했다. 아무리 시세보다 저렴한 행복주택이라지만 모아둔 목돈도 손 벌릴 곳도 없는 내게는 너무 큰 금액. 계약부터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일텐데, 이거 그냥 저소득층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자산과 소득이 있으면서 저소득층이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거구나 싶어 좌절도 많이 했다.

 

소득이 낮은 사회초년생. 가족과는 연을 끊었고, 목돈 없이 고시원에서 거주하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느낌으로 살았다. '관리할만한 돈이 없는데 무슨 돈 관리냐.' 정도의 태도로 살아왔기 때문에 돈도 없고 돈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내게 1금융권 대출이 안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쾌적한 환경에서 하고싶은 일 하며 사는 미래를 꿈꾸기야 했지만 그런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었다. 행복주택 당첨이라는 운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고시원 생활에서도, 경제에 대해 무기력하고 무지한 상태에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운 좋게 당첨된 행복주택을 놓칠 수 없어 당장 대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뒤로 약 8개월간 좌절을 동반한 돈 공부와 대출 실행, 입주까지의 여정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여전히 저소득층이며 생활환경이 그리 쾌적하진 않지만 그래도 인생 로드맵 하나 정돈 어렴풋이 그리고 있고, 조그만 희망 정도는 가진 인간으로 살고있다. 거주기간 끝나서 행복주택을 나갈 즈음엔 한 단계 나아진 집에서 살기를 희망하며 난생 처음으로 돈도 모으고 있다. 내겐 의미가 큰 8개월이었기 때문에 기록을 조금 남겨보려고 한다.

 

1. 계약금 납부, 나의 경제 상황, 소액 대출

고지된 계약금을 납부하고 온라인 계약 기간에 계약을 완료하려고 했다. 그럴 계획이었지만 기한 내에 납부하지 못해 온라인 계약은 하지 못했고, 온라인 계약 보다는 기간이 길었던 현장 계약을 했다. 계약 마감일에 거의 울면서 했다.

 

정말 돈 개념이 없었던지, 계약금 (예를 들어) 650만원이 적혀있었는데 이걸 65만원으로 봤다. '이 정도는 낼 수 있지' 하며 65만원만 입금해놓고서는 온라인 계약기간을 기다렸다. 계약 시스템에 접속해보니 계약이 불가능하길래 시스템상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몇 번을 전화문의했다. 온라인 계약기간 마지막날에야 계약금이 65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남은 건 현장 계약. 마감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을 알아봐야했다.

 

모바일로 은행 여기저기 들어가 대출 한도를 조회해보니 죄다 대출 불가가 나왔다.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아무거나 조회해본 건데 한도 조회는 해보지도 못했다. 내 신용등급이 낮은가? 싶어 신용등급 조회라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해봤다. 한 곳에서는 3등급이 나왔고 다른 곳에서는 4등급이 나왔다. 낮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안될까. 대출거절 사유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가능성 있는 이유들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지만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거절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신용등급 조회 사이트의 낯선 화면을 이것저것 뒤져보니 내겐 기대출이 있었다. 알고있던 학자금 대출도 있고, 모르고 있던 대출도 있었다. 그리고 상태는 '연체'였다.

 

이것 때문이구나. 멘붕 온 채로 추적을 해보니 대출 상환 계좌는 내가 방치해두고 있던 어떤 은행의 계좌였다. 십 년 가까이 들어가보지도 않았던 그 은행의 온라인 뱅킹 사이트에 들어가서 거래내역을 조회했다. 내역을 보고 복잡한 마음에 한참을 울었다. 잔액 0원에 가까운 통장으로 엄마가 매달 일정한 날짜에 nn만원씩 입금했고, 며칠 뒤 대출 상환으로 nn만원씩 출금되고 있었다. 그러다 1년 쯤 전부터 엄마의 입금일이 늦어졌다. 그 때부터 매달 3~5일씩 연체가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대출 거절 사유를 검색해봤을 때 최근의 연체 기록은 치명적인 듯 했다. 내가 받은 대출도 아닌데, 억울했다. 여지껏 학자금 대출도 내 빚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긴 했다. 대학 입학 당시에 엄마가 등록금 내준다고 한 말을 믿었지만 매 학기 내 이름으로 학자금 대출은 계속 생겼다. 등록금 대출만 받았나. 생활비 대출도 꼬박꼬박 받았다. 그러고도 생활이 힘들어서 대학은 자퇴했다. 고졸인데 학자금 대출 이천만원이 있다니 웃기잖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고 내 일 아닌 것으로 여겨온 현실을,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기분은 억울하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나가려면 이것들이 내 빚이고 결국 내가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정말 하기 싫어서 한참을 모니터 노려보고, 울고, 노려보고. 순응하려고 애썼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연체 상태를 해소하고, 내가 관리할 수 있게 상환 계좌를 평소 사용하는 계좌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연체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잔고 확인하기, 내게 상환해야 할 대출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신용상태 주기적으로 체크하기.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한 차례 멘붕을 겪었지만 아무튼. 나는 대출을 받아야했다. 전세 계약에 쓰이는 금액이니까 전세 대출을 받으면 되는거구나 싶었는데 그렇진 않았다. 행복주택 계약을 하는 시점과 입주 예정시기는 10개월 정도 차이가 났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곳이니 등기도 없고. 지역에서 지원하는 전세 대출 사업이 있어서 그 곳에도 문의해봤고 은행도 가봤는데 입주 예정시기가 10개월 후라는 것을 듣고는 "왜 계약을 지금 하냐"고 묻더라. 일반 원룸 계약도 해본 적 없는 나로썬 영문 모를 반응이었다. 아직 계약도 하지 않았고 입주일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세 대출은 받을 수 없었다.(전세 대출의 실행일이 입주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대출 한도 조회를 위한 여러 서류들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은행원도 서류 가져오라는 말 말고는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았다.

 

주말이 끼어있어서 은행을 여러번 방문하는 것도 어려웠고 하루가 급했다.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돈을 사용할 곳에 맞는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 내 상황엔 뭘 받아야 하는지 판단이 안섰다. 전세 대출이 안되면 소액 대출이라는 것 밖에 없는 듯 했다. 이 정도 금액은 소액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허탈감은 살짝 있었다. 대부분의 은행앱이 한도 조회시에 명확한 거절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연 소득 2000만원 미만이면 대출 안된다고 알려주는 곳도 있었다. 연체보다 소득 조건이 더 큰 건가 싶어서 또 한 차례 멘붕과 좌절을 겪고. 제 2금융권으로 가도 대출 거절이 나오는 곳이 많았다. 대출금리도 높은데 거절까지 당한다. 게다가 대출 실행까지 1~2주는 염두해두란다. 계약 마감일이 며칠 안남은 시점에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서 행복주택 포기하면 앞으로 나에게 미래가 없을 것 같아서 가장 위험한 대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떤 은행에서 어떤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대충은 알고있고 필요하다면 영업점에 방문해서 물어볼텐데. 백지 상태였던 그 때엔 은행과 대출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걸러내는 데에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밤새 울며 검색을 하다가 찾아낸 것은 '온라인 햇살론'이었다. 그냥 햇살론 말고, 온라인 햇살론. 햇살론은 저신용, 저소득자를 위한 정부 지원 상품이고 제 2금융권 상품 치고는 대출금리가 낮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서류제출, 신청, 대출 실행까지 시간이 걸린다. 햇살론과는 별개로 온라인 햇살론이 있는데, 이 상품은 모바일로 바로 신청할 수 있고 3일만에 실행된다. 이거라면 될 것 같았다. 앱을 설치하고, 인증서 로그인을 하고, 서류 제출하고, 한도 조회 화면 나오고, 신청 화면이 나오고 하는 동안 "거절" 알림이 뜰까봐 조마조마했다. 신청하고 나면 영업시간 중에 확인 전화 같은 것이 오고, 그 다음에 전자약정을 진행한다. 최종적으로 통장에 돈이 송금될 때까지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막판에 거절되면 어떡하나,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대출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대출은 무사히 실행됐고 계약도 무사히 마쳤다. 시간 촉박했는데 어떻게 딱 필요한 대출을 잘 찾아냈네, 대출금리 7%대면 정말 괜찮게 잘 찾은거네, 하며 스스로를 칭찬하다가도 현실이 서러웠다. 이제 대출 상환으로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갈 금액이 얼마, 남은 대출이 얼마, 이걸 다 갚으려면 몇 년? 몇 달 후의 일이긴 하지만 입주 하려면 보증금 대출도 받아야 하는데, 그럼 내 생활은 어떻게 되는거지? 행복주택에 입주해서 저렴한 월세로 살게 된다고 이 모든 것들이 커버 가능할까? 어떻게든 소득이 늘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연봉협상으로 많이 올릴 수 있을까? 이직이 가능할까? 다른 부수입을 얻는게 가능할까? 이미 매일 피곤하게 살고 있는데 다른 활동이 가능해?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그 다음이 두렵고 절망스러웠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머리 굴려서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생활이 나아지는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 외에 답이 없다고 생각이야 했지만. 하나 해결했으니 일단 미뤄두자는 마음이 더 컸다. 엄마가 상환해오던 기대출 상환을 내가 하기로 결정했고, 새로 받은 대출도 있다. 원래도 적은 수입이었는데 이제는 그 수입의 상당 부분이 대출 상환에 할당된다. 지출을 더 더 줄이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그 후 세 달 정도는 평소 지출보다도 훨씬 많이 썼다. 두 배 가까이 쓴 달도 있었다. 신용카드가 있음에 감사했다. 카드가 없었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하지 못하고 자해만 하다 죽었을 것 같은데, 카드가 있으니 카드빚을 져서라도 맛있는 것 먹고 사고싶은 것 사며 최소한 연명은 한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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