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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호텔에서 푹 쉬기. 호캉스. 본문

잘 살아보려는 노력

설 연휴는 호텔에서 푹 쉬기. 호캉스.

모가문제냐 2023. 1. 24. 19:16


좋은 호텔에서 2박 이상 편하게 시간 보내기.

천천히 걸어 다니며 방 안을 둘러보고, 가구들을 열어보고, 스트레칭하고, 춤도 추고, 운동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면적. 내가 사는 원룸보다 넓은 공간. 조용한 주변 환경. 깨끗한 욕실에 느긋하게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 사다리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몸을 대자로 쭉 뻗고 한 바퀴 굴러도 되는 넓은 침대. 볕이 잘 드는 큰 창문과 레이스 커튼. 룸 서비스. 커피 머신.

"명절 연휴에 호텔이라니, 그만한 재력이 있는 것이 부럽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아마 그분이 말한 '그만한 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니까. 항상 가장 좋은 걸 사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호텔에 가고 싶을 때 '호텔에 가고 싶으니 비수기를 노려서 예약한다'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내 생활을 좋게 만드는 데에 효과적인 몇 가지에는 아끼지 않는다. 그 몇 가지 중에 호텔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내가 술 담배를 일상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 할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상적 빚이 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호텔에 얼마 쓰는지를 보고 재력이 어쩌고 하는 계산을 하는 건 틀린 계산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나라는 사람이 남이 보기에 여유로워 보일만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점은 뿌듯하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삶에 부정적 평가를 하고 우울을 스스로 퍼먹는 인간이라, 남의 시각에서 인정받아야 좀 안심이 된다. 내 삶이 옳은 방향을 향해 있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잘 보살피고 있는 것 같다.

내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지출을 하지는 않았다. 요즈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취하는 것이다. '좋은 호텔에서 2박 이상 편하게 시간 보내기' 라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고, 내게 필요한 것을 취하기 위해 이 방법을 실행했다.



호텔은 사용자의 '편한 머무름'을 위해 디자인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나는 그 인테리어를 잘 살펴보고자 했다. 당연히 좋은 것의 기준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편적인 것이 무조건 틀릴 거라는 고집을 갖고 있을 필요도 없다.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내 삶을 좋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널찍한 비즈니스 테이블, 구석 구석 배치된 조명, 침대 옆 테이블, 커다란 여러 개의 서랍장, 세로로 길고 조명이 밝은 욕실 거울, 레이스 커튼과 암막 커튼, 무겁지 않게 몸에 밀착되어 체온을 유지해 주는 이불.

카펫 바닥은 위생이 신경쓰이고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별로였다. 신발을 신고 다닌다면 또 다르겠지만, 어느 곳에서든 몸을 뻗고 운동하고 싶은 내게는 장판 바닥이 더 좋다. 욕조는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나았지만, 더 컸으면 했다.



쉬면서 첫번째로는 잠을 많이 자고, 그다음으로는 노트북으로 글을 써 내려가며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가져간 노트북은 한 번 열지도 않았다. 컴퓨터 디톡스를 알차게 했다. 책과 노트에만 손이 갔다. 정신이 맑았고,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왔다. 많이 많이 읽고 싶었다.

머무른 둘째날에는 명절에 집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친구를 초대했다.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 쭉 나 혼자 있는 것이 유익할 거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지난주에도 만났으면서 이번에도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다. 그 친구와 나눈 모든 얘기들이 마음을 촉촉하게 채우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는데, 혼자 잘 때 무서웠다. 이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두려웠다. 첫째 날 밤 약 없이는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와 있으니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편하지만 낯선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예쁜 배쓰밤을 풀어놓은 욕조에서 물놀이 하며 멍하니 있으려니,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멋진 아이디어들이 점점 형태를 갖추었고 서로 연결되며 탄탄해지기 시작했다. 짜릿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계속 생각하고, 계속 노트에 적어 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적어둬야할 내용이 자꾸만 생각나서 잠잘 시간이 아까웠다.

나를 보살피며 잘 살아오다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일을 수행한 내가 기특하다. 앞으로의 전진을 위해 엔진을 잘 닦고 오일을 잘 교체해 넣은 느낌이다. 원하는 바를 취하고 돌아온 뿌듯한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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